이안을 바라보는 눈
2016.02.12 11:26

후암동 눅- 시간의 집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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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할 말을 찾기가 어려운데, '깊고 잠잠한 물 속에 잠기는 기분'이라고 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근접한 말이겠다.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은 아주 낯선 경험이었다. 초여름 늦은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어둠이 드리워 있었고, 큼직한 서향 창 아래에는 금빛 볕 조각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80년이 넘은 일식주택을 고친 집이라는 설명을 들은 것은, 좁은 현관을 올라 아담한 거실에 서서 맞은편 어둑어둑한 부엌을 보고 있을 때였다. 그때서야 그 묵직한 고요함이 시간의 무게가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집이 골목을 향해 미묘하게 기울어 있다는 설명도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진 여든 살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따.

 

 작은 집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곳이 있는가하면, 분명 낡고 오래됐을 것이 새것처럼 빛나는 부분도 있었고,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어른어른 겹쳐진 표면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것들이 교묘하게 얽히고설켜, 옛것도 새것도 아닌 완전한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늙은 육신이 생기를 되찾은 것처럼, 나이가 무색해 보이는 정정한 노신사가 말쑥하게 외출복을 차려입은 것 마냥, 이 집은 남산 자락에 80여 년을 살아온 어떤 존재였다.

 

 1930년대 중반쯤 지어진 이 집은 해방과 함께 원래의 주인과 헤어졌다. 광복과 전쟁이 격렬히 휘몰아치고,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의 물결이 솟아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긴 세월의 풍파속에서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 마을 앞을 휩쓸고 지나간 재개발 광풍에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을 것이다.

 

 격동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여러 번 새 주인을 만났다. 하지만 다들 자신의 고단한 삶을 살기에 급급했고, 정작 자신들 삶의 공간을 눈여겨보거나 애정을 갖고 보살펴주지 않았다. 그들이 떠날 때마다 늘어나는 것은 휘어진 못 자국과 겹겹이 쌓이는 벽지뿐이었다. 집은 그렇게 많은 주인으로부터 말없이 멀어졌고, 시간의 먼지만 쓸쓸히 쌓여갔다.

 

 여든 해가 넘어가던 2014년 겨울 한 낯선 이가 골목 어귀를 어슬렁거리고 집을 기웃거리더니 새 주인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전 집주인들과 어딘가 달랐다. 삶의 치열함에서 한발 물러선 여유가 있었고, 낡고 오래된 것에 관심이 있었고, 자신의 삶과 공간의 관계에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집수리를 고심하던 주인이 며칠 뒤 한 중년 건축가를 데리고 왔다. 그는 한눈에 집을 알아봤다. 어떤 세월을 견뎌왔는지, 어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는지, 그러는 동안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볼품없이 늙은 집의 주름진 얼굴 너무로 시간을 초월해 남아 있을 젊은 시절 집의 본 모습을 그는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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